▶ 오르세 박물관
프랑스 파리
Musée d’Orsay
<역사>
센느 강을 경계로 루브르 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는 오르세 박물관은 원래 약 1세기 전인 1900년 만국박람회 당시 기차역과 호텔로 쓰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대대적으로 개조를 해 박물관으로 문을 연 것은 1986년이다. 2월혁명이 일어난 1848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의 미술작품과 19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문학, 음악, 사진, 영화 및 건축과 장식 예술품 일체를 보관 전시하고 있다. 오르세 박물관은 따라서 고대 이집트에서 19세기 중엽의 낭만주의까지의 유물과 예술품을 보관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20세기 국립 현대 미술관인 퐁피두 센터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루브르부터 관람을 하고 이어 시대순으로 오르세, 퐁피두 센터를 보는 방법이 가장 고전적인 순서가 되겠지만, 고대와 현대의 중간 역할을 하는 오르세 박물관부터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박물관 건물은 19세기 파리에서 지어진 몇 안 되는 철골 구조의 건물로 건축적 의미가 큰 건물이었다. 에펠 탑을 지을 때 들어갔던 7천t보다 더 많은 철골이 들어갔다. 파리와 오를레앙을 연결하는 기차역으로 건설되었고 만국박람회를 치르기 위해 호텔이 들어섰지만 급속한 철도망의 확대와 기술 발달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르세 역은 폐쇄되고 자연히 호텔 역시 문을 닫게 된다.
건축은 현상 응모에 참가한 3명의 건축가 중 빅토르 달루의 작품이 선정되어 건축은 물론 실내 장식까지 그에게 맡겨진다.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박물관학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사람은 응모한 6개 팀 중에서 선정된 ACT 건축 연구소 팀의 르노 바르동, 피에르 콜보크, 장 폴 필립퐁이었다. 그리고 내부의 전시실 설계는 퐁피두 센터의 현대 미술관을 설계하기도 했던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가 담당했다. 오르세 박물관이 기차역이었다는 것은 센느 강을 바라보고 있는 두 개의 대형 시계탑과 7개의 대형 아케이드 위에 올라가 있는 보르도, 툴루즈, 낭트 같은 기차의 행선지를 상징하는 세 개의 조각을 통해 알 수 있다. 오르세 역은 건축 즉시 미국 건축가들에 의해 모방되어 뉴욕의 펜실베이니아 역,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에 거의 그대로 응용되었고 1907년에 완공된 워싱턴의 유니언 스테이션 역시 오르세 역을 모방하여 지어진다.
오르세는 처음부터 단순히 회화 조각만을 위한 미술관이 아니라 문학, 사진, 건축, 장식 미술, 영화까지 전시하는 19세기의 문화사 박물관으로 출발하게 된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오르세 박물관을 오르세 미술관으로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경우이다. 왜냐하면 오르세 박물관은 백과사전식 박물관 개념이 처음 도입된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빛은 건물이 아니라 작품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건축가 가에 아울렌티가 내부 전시실을 설계하며 했던 말이다. 이는 정확한 지적이었다. 오르세에 들어갈 작품 목록 중에는 가장 값나가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즐비하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그 어떤 작품들보다 빛의 회화인 인상주의 회화를 중심에 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자연 채광과 실내 조명은 서로 어울려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내야 했으며 따라서 천장이나 벽의 색깔 등도 모두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했다.
이런 대원칙에 입각해 플랫폼으로 쓰였던 중앙홀은 자연 채광을 위해 다시 사용되었다. 그리고 양쪽에 2개 층의 발코니를 두어 위에는 인상주의 작품을, 그 아래에는 관전에서 입선한 작품들과 자연주의, 상징주의, 1900년 이후의 회화 등 비교적 빛에 덜 민감한 그림들과 조각을 배치하게 된다. 그래서 오르세 박물관에 들어가게 되면 19세기라는 이름의 거대한 기차역에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오르세 박물관이 가장 아끼는 소장품이 모네의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그림인 <생 라자르 역>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관람은 1층의 중앙홀에 전시된 1870년까지의 작품을 좌우로 왕래하며 본 후, 박물관 끝에 있는 계단을 통해 가장 위층인 3층으로 올라가 인상주의를 보고 내려오면서 마지막으로 로댕, 마이욜, 부르델 등의 조각이 놓여 있는 2층 발코니를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 방식은 소장품을 시대별로 감상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특징>
오르세 박물관의 진정한 가치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방가르드였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와 마네, 그리고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작품들을, 아카데미즘의 영향 아래에서 제작되어 당시 살롱 전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현대에 들어 미학적 가치는 별로 없는 공식 화가들의 고전적 작품들과 함께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들어 살롱에서 떨어진 작품만 모아 별도로 전시한 낙선전에서조차 웃음거리였던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와, 같은 해 살롱에 출품되어 나폴레옹 3세가 현장에서 바로 구입한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오르세 박물관이다. 지금 이 두 작품의 미학적, 문화사적 가치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이후의 미학적 변화는 하나의 혁명에 버금가는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현대의 출발점이었다.
인상주의라는 사조는 미술작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상주의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려면 당시 산업화의 상징인 철도, 사진술의 발달, 그리고 부르주아 층의 확산과 이로 인한 도시화 문제 등 문명사적 변화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기차가 없었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감히 북프랑스의 바다나 파리 교외의 강가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물리적 이유에 덧붙여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다루었던 철교와 기차가 등장하는 그림들은 풍경화에 새로운 구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철도가 끼친 가장 의미있는 영향은 차창을 흘러가는 풍경, 다시 말해 공간과 시간의 인위적인 만남이 허락하는 풍경에 대한 독특한 감각이었다.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은 한 편의 소설이기 이전에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자료이기도 하다. 마네가 그린 졸라의 초상화와 졸라가
마네를 모델로 해서 쓴 소설은 서로 떨어뜨려 놓고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당연한 접근 방식이 모든 대중을 위해 박물관학적으로 적용된 박물관이 오르세 박물관이다. 또한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로댕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인상주의와 시인 말라르메, 소설가 프루스트, 음악가 드뷔시의 연관성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역할을 한다. 모파상의 유명한 소설 <벨 아미>에서 읽을 수 있듯이, 당시 파리는 권력과 언론이 긴밀한 유착 관계를 맺고 사회를 지배하던 때였다. 19세기 언론의 큰 흐름 역시 오르세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린 곳은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였다. 이점은 사진의 발명과 확산이 인상주의에 끼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범박한
사실주의에 종언을 고한 사진의 발명은 현실 재현이라는 개념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고, 때마침 휴대 가능한 튜브물감이 발명되어 화가들을 야외로 내몰았다. 따라서 인상주의는 회화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20세기에 진입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19세기 후반의 문명사적 움직임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은 이른바 파리 건축사에서 흔히 ‘그랑 불르바르 건축기’
즉, 간선도로 건축기로 불리는 대규모 공공 공사가 파리 전역에서 벌어졌던 시기다.
때마침 1851년 영국에서 시작된 만국박람회가 파리에서도 자주 개최되어 그때마다
대형 건물과 기념물이 세워져야만 했다. 샤이오 궁, 그랑 팔레, 에펠 탑, 오르세 박물관 등등이 이런 기념물 중 살아남은 것이고 오페라 가, 오스만 가, 샹젤리제 등이
파리의 간선도로로 새로 개통된 길들이다.
이런 대규모 가로 정비의 또 한 가지 목적은 혁명군이나 시위대들에게 유리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들을 정비하는 데 있었다.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한탄했던, 졸부들과 독재 정권의 합작품인 이 대로 정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지금도 파리 오페라 하우스 인근에는 최고급 부티크와 레스토랑, 걀르리 라파이예트 등 대형 백화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르세 박물관 1층 끝에는 당시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며 거리를 정비했던 도시계획 모형이 두꺼운 유리 상자에 넣어져 관람자들이 발 밑으로 볼 수 있도록 지하에 전시되어 있다. 오르세 박물관은 19세기 말에 등장한 유럽 최초의 산업적 장식 예술인 아르누보를 가장 체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파리 지하철 입구 역시 아직도 엑토르 기요마르가 디자인한 아르누보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 오르세 박물관은 마티스, 블라맹크 등의 야수파까지를 전시하며, 다음 세대의 문화 즉, 20세기 현대 예술은 퐁피두 센터에서 이어진다.
건축시대 : 1986년
건축가/작가 : 빅토르 달루
휴무일 : 월요일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
오픈시간 : 화, 수, 금, 토, 일 09:30~18:00, 목 09:30~21:45
교통편 : 지하철 M12 Solfe'rino 혹은 RER-C Muse'e d’Orsay 역, 버스 24, 63, 68, 73, 83, 84, 94번
전화번호 : +33140494814
주소 : 1 Rue de la Légion d'Honneur, 75007 Paris, 프랑스
매월 첫째 일요일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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