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순으로 가는 파리 박물관 기행

프랑스 파리

쥬디 JEUDI

시대순으로 가는 파리 박물관 기행

프랑스 파리 | 2022.03.10

파리 주요 정보





고대 | 루브르 박물관

근대 | 오르세 박물관

현대 | 국립 현대 박물관 




고대|루브르 박물관

Musée du Louvre

고대 이집트에서 19세기 중엽의 낭만주의까지 방대한 유물과 예술품, 8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루브르 박물관은 단순히 프랑스의 한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전 인류의 재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01  박물관소개

12세기 말 중세 시대의 필립 오귀스트 왕에서 20세기 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까지 800 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루브르.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이 장구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루브르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는 센느 강변은 12세기 말, 바이킹 족의 잦은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세운 중세식 성이 있던 자리다. 루브르가 처음 왕궁으로 사용된 것은 14세기 샤를르 5세 때로, 이때부터 왕의 진귀한 귀중품과 도서들이 루브르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화려한 거실과 집무실들도 마련되었다. 하지만 샤를르 5세가 서거하자 프랑스 궁정과 귀족들은 루브르 궁을 버리고 파리 남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루아르 강 쪽으로 내려갔다. 이로 인해 루브르 궁은 다시 군사적 목적으로 쓰이게 된다. 이 중세 성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찾는 것은 프랑수아 1세에 의해서였다. 파리로 돌아온 프랑수아 1세는 1545년 성을 헐기 시작하여 르네상스 식 성으로 증축하였다. 이후 프랑스 절대왕정이 막을 내리는 루이 16세 때까지 역대 모든 프랑스 왕들은 어떤 식으로든 궁에 자신들의 치세 흔적을 남겼고, 나폴 레옹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스가 대혁명의 와중이었던 1793년 루브르 궁이 무제움Museum, 즉 박물관으로 선포되면서 왕족, 귀족, 성직자들이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들이 압수되어 루브르 궁에 유물로 들어오게 된다. 나폴레옹 제정 때는 잠시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선포되어 전쟁에서 노획한 엄청난 양의 유물들을 루브르에 들여왔다. 상당수의 유물들을 돌려주었지만, 루브르에 그냥 남은 것들도 있다.

루브르 궁은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 때 지금과 같은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리볼리 가에 면한 건물이 완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도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전시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리게 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대 루브르 박물관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20세기 말 14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대 루브르Le Grand Louvre’ 계획에 의거해 약 20년 동안 이루어진 공사가 끝난 후다. 재무성에서 사용하던 건물이 박물관으로 편입되었고, 출입구와 주차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나폴레옹 광장 지하에 자리잡게 되었으며, 내부 역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는 등 초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수장고에 보관되던 유물들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고, 베르사유 등 야외에 전시되어 파손 우려가 있던 대형 기념물 조각들 역시 루브르에 들어온다.

모든 공사는 나폴레옹 광장에 유리 피라미드를 세운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아이오밍 페이가 맡았다. 1981년 대통령좌에 올라 14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던 프랑수아 미테랑의 ‘대 루브르Le Grand Louvre’ 공사를 끝으로 루브르는 마침내 800 여 년 동안의 긴 변화를 끝내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마지막 공사를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아이오밍 페이가 담당했다는 것은 이집트 유물에서 <밀로의 비너스>와 <모나리자>를 거쳐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에 이르는 귀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관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 단순히 프랑스라는 한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전 인류의 재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루브르 박물관

전화번호 | (01)4020-5317 교통편 | 지하철 M1 Palais Royal, Muse´e du Louvre 역

개관시간 | 09:00~18:00 (수, 금 21:45까지)

매표소 | 17:15까지 (수, 금 21:15까지), 매표소와 입구가 있는 피라미드는 22:00까지, 여유롭게 관람하고 싶다면, 수, 금 저녁 시간을 이용할 것 (17:00~21:45)

휴관일 | 화요일, 1월 1일, 5월 1일, 8월 15일, 12월 25일

웹사이트 | www.louvre.fr 


루브르 전시관 내부

02 루브르가소장한서양회화들

스페인 회화

루브르 박물관에 스페인 회화 작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 전쟁 때부터다. 전쟁에는 항상 따르기 마련인 일이었고, 이 중 대다수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 갔다. 이후 7월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 필립은 스페인 미술 열광자였는데, 특사를 파견하면서까지 스페인 대가들의 작품을 구입했다. 만일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들이 루브르에 없어 마네가 이들 작품을 보지 못했다면 과연 프랑스 미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스페인 회화는 이후 마네 같은 프랑스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프랑스 회화

루이 14세 때부터 이미 중요한 프랑스 회화 작품들이 수집되었다. 고전주의를 가능케 한 이 절대군주에 이르러 학술, 문예, 예술 전 분야에 걸쳐 아카데미가 창설되면서 예술가에 대한 메세나가 하나의 프랑스적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프랑스 고전주의의 3대 화가들인, 니콜라 푸생, 클로드 젤레(일명 클로드 로랭), 샤를르 르브룅 등의 작품은 거의 루이 14세 때 구입해 왕가의 소장품으로 들어온 작품들이다. 이후 매년 혹은 격년제로 개최된 관전인 ‘살롱Salon’은 미술품 수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혁명 당시 귀족이나 성직자들이 소유하고 있던 많은 작품들이 몰수되어 국가 재산으로 귀속되면서 루브르의 소장품은 한층 풍부해진다. 필립 샹페뉴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루브르에 들어온다.

하지만 프랑스 초기 회화와 퐁텐느블로 파의 작품까지 소장하여 지금과 같은 보다 완벽한 컬렉션을 보유하게 되는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 때다. 물론 나폴레옹 1세의 20년 남짓한 유럽 제패 역시 루브르의 컬렉션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일조했다. 백일천하 이후 완전히 실각하면서 상당수 유물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모든 작품이 반환된 것은 아니었고 기증되거나 다른 작품과 교환되기도 하면서 루브르 소장품으로 남은 작품들이 적지 않다.

유물 소장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언급되어야 할 것은 많은 양의 로코코 미술 작품들을 기증한 라카즈 같은 개인 수집가들의 유증이다. 아울러 유물 기증과 구입을 위해 결성된 ‘루브르의 친구들’ 이라는 단체의 활동도 특기할 만하다.


나폴레옹 3세, 이때 루브르 박물관은 지금과 같은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독일 회화

루브르 박물관의 독일 회화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독일 회화사 전체를 조망해 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각 시대와 사조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15세기 독일 회화는 독일 박물관을 제외한 전 세계 박물관 중에서 루부르에 그중 가장 뛰어난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다. 쾰른 파가 제작한 제단화 연작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루브르의 독일 회화 관이 주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르네상스 거장들의 대표작들이 있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크라나흐는 물론이고 한스 홀바인(아들)의 초상화들은 독일 회화의 보석 같은 작품들이다. 또한 이 대가들 곁에 한스 발둥 그린을 비롯한 기타 독일 르네상스를 빛낸 예술가들이 자리잡고 있어 르네상스 독일 회화를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영국 회화

영국 회화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당히 늦게 개화했다. 영국 회화가 주로 초상화를 통해서 독립된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것은 18세기 들어서다. 이런 이유로 루브르 박물관의 영국 회화실도 늦게 마련되었고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윌리엄 블레이크 등의 작품이 없을 정도로 그 질에 있어서도 다른 국가관에 비해 열악하다. 이는 비단 루브르만의 사정은 아니며 어느 정도는 영국 회화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근대|오르세 박물관

Musée d’Orsay

소장한 작품의 시대순으로 보면 루브르와 국립 현대미술관을 잇는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 특히 인상주의 작품이 돋보이는 곳.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이 원래 기차역이었다는 사실. 


오르세 박물관

  • 위치 | 62, rue de Lille, 7e ☎ | (01)4049-4814
  • 개관 시간 | 화, 수, 금, 토, 일요일 09:30~18:00, 목요일 09:30~21:45
  • 웹사이트 | http://www.musee-orsay.fr
  • 교통편 | 지하철 M12 Solferino, RER-C Musee d’ Orsay역 버스 24, 63, 68, 73, 83, 84, 94번
  • 휴관일 | 월요일, 1월 1일, 5월 1일, 12월 25일

센느 강을 사이에 두고 루브르와 마주보고 있는 오르세 박물관은 약 1세기 전인 1900년 만국 박람회 당시 기차역과 호텔로 쓰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에펠 탑을 지을 때 들어갔던 7,000톤보다 더 많은 철골이 들어간 철골구조의 건물인데, 대대적인 개조를 거쳐 1986년에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2월혁명이 일어난 1848년에서 일차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의 미술작품과 19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문학, 음악, 사진, 영화 및 건축과 장식 예술 일체를 보관 전시하고 있다. 인상주의 회화와 조각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소장품은 약 3,000 여 점에 달한다. 

“빛은 건물이 아니라 작품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퐁피두 센터의 실내 건축을 담당하기도 했던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우렌티가, 다른 작품들보다 빛의 회화인 인상주의 회화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오르세 박물관의 내부 전시실을 설계하면서 했던 말이다.

자연 채광과 실내 조명은 서로 어울려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내야 했으며, 천장이나 벽의 색깔 등도 모두 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런 대원칙에 입각해 기차 플랫폼으로 쓰던 중앙홀은 자연 채광을 위해 다시 사용되었고, 대신 홀 양쪽에 2개 층의 발코니를 두어 위에는 인상주의 작품을, 그 아래에는 관전에서 입선한 작품들과 자연주의, 상징주의 및 1900년 이후의 회화 등 비교적 빛에 덜 민감한 그림들과 조각을 배치하였다.


01  관람요령

오르세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부터 19세기 중엽의 낭만주의까지의 유물과 예술품을 보관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20세기 현대 예술 박물관인 퐁피두 센터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루브르부터 관람한 후 이어 시대순으로 오르세, 퐁피두 센터를 보는 방법이 가장 고전적인 순서가 되겠지만, 고대와 현대의 중간 역할을 하는 오르세 박물관부터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관람은 1층의 중앙홀에 전시된 1870년까지의 작품을 좌우로 왕래하며 본 후 박물관 끝에 있는 계단을 통해 가장 위층인 3층으로 올라가 인상주의를 보고, 마지막으로 내려오면서 로댕, 마이욜, 부르델 등의 조각이 놓여있는 2층 발코니를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 방식은 소장품을 시대별로 감상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오르세 박물관의 진정한 가치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아방가르드였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와 마네 그리고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작품들을, 아카데미즘의 영향 아래에서 제작되어 당시 살롱 전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미학적 가치는 별로 없는 공식 화가들의 고전적 작품들과 비교를 해가며 함께 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살롱에서 떨어진 작품만 모아 별도로 전시를 했던 낙선전에서 조차 웃음거리였던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와, 같은 해 살롱에 출품되어 나폴레옹 3세가 현장에서 바로 구입한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오르세 박물관이다.

오르세 박물관을 관람하는 마지막 방법은 중고등 학교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림들 위주로 보는 것이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반 고흐의 < 자화상> 혹은 밀레의 <만종>이나 로댕의 <생각하 는 사람> 같은 작품들이 모두 오르세에 있다.


[ 철골과 시계는 원래 기차역이었음을 알려준다. ]

02  오르세 인근의 추천 레스토랑

라 메종 데 폴리테크니크 La Maison des Polytechniciens-Restaurant Le Club

오르세 미술관 인근 18세기 건물로 프랑스 화가 바토Watteau(1684~1721)가 장식을 담당한 유서 깊은 곳이다. 아라베스크 풍의 천장 장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곳에서 루이 나폴레옹에 대한 추대가 이루어졌으며 1920년에는 명문 이공과 대학 건물로 사용되었다. 바다가재 튀김, 토끼고기 요리, 시금치 요리 등이 준비된다. 디저트류, 와인리스트도 훌륭한 편이다.

  • 위치 12, rue de Poitiers 75007 Paris
  • 전화번호 (014)954-7454 팩스 (014)954-7484
  • 영업시간 월~금요일 ~22:00
  • 교통편 지하철 Rue-du-Bac 역
  • 휴무일 주말, 공휴일, 7월 29일~8월 28일, 12월 23일~1월 7일 정기 휴가

르 카페 데 레트르 Le Café des Lettres

요리보다는 이곳 특유의 열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많은 단골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다. 영국풍, 스웨덴풍의 식사도 제공된다. 매달 그림 전시회도 개최된다. 인근 메종 데 제크리뱅Maison des Ecrivain의 지식인들이 문학 토론과 소설 비평을 위해 이곳을 찾기도 한다. 어둡고 침침한 실내와는 달리, 테라스 뜰은 무척 유쾌한 곳이다. 여름날 오후 테라스에 앉아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즐겨보자.

  • 위치 53, rue de Verneuil 75007 Paris
  • 전화번호 (014)222-5217
  • 영업시간 월~토요일 12:00~23:00, 일요일 12:00~16:00
  • 교통편 지하철 Rue-du-Bac, RER-C Muse´e-d'Orsay 역
  • 휴무일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2주간 휴무

현대|국립 현대 미술관

Musée National d’ Art Moderne

현대 미술 사조들을 한눈에! 퐁피두 센터에 위치한 국립 현대 박물관은 흘러간 예술품을 단순히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생활과 예술을 생산하는 문화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퐁피두 센터 외부. 건물의 기능적 역할을 하는 부분을 모두 건물 외부에 노출시켰다.

국립 현대 미술관

  • 위치 | 19, rue Beaubourg 75004 Paris
  • ☎ | (01)4478-1233 개관시간 | 11:00~20:00, 목~금 ~23:00
  • 웹사이트 | http://www.centrepompidou.fr
  • 교통편 | 지하철 M11 Rambuteau, Ho^tel-deVille, RER-A, B Chatelet-les Halles역 버스 21, 29, 38, 47, 58, 69, 70, 72, 74, 75, 76, 81, 85, 96번
  • 휴관일 | 화요일, 5월 1일 


미술의 즐거움과 지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국립 현대 미술관


퐁피두 센터 옥상에서 본 파리 시내 전경

퐁피두 센터 4,5층에 자리잡고 있다. 각 전 시실에는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문이 준비되어 있다. 약 5만 점의 현대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퐁피두 국립 현대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규모가 큰 현대 미술관이다. 고대에서 낭만주의까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와 1848년에서 1914년까지의 근대 미술을 보관하고 있는 오르세 박물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사조상으로 보면 마티스, 드랭의 야수파, 피카소, 브라크의 입체파 이후 표현주의, 추상, 설치미술 등 거의 모든 현대 미술 사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며, 그 외에 건축 설계도와 데생 등도 소장하고 있다.

1905년에서 1960년까지의 예술품은 5층에, 1960년 이후의 컨템퍼러리 작품들은 4층에 전시되어 있다. 내부 유물 배치는 오르세 박물관의 실내를 설계한 가에 아울렌티가 맡았다. 

미술관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모순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지식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유희의 공간이기도 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아무런 즐거움도 줄 수 없는 미술관이라면 아무도 찾지 않을것이고 미술관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미술관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즐거움과 지식을 동시에 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두 번째 모순은 미술관의 유용성 문제이다. 미술관을 창조하고 생산하는 공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순수하게 관람하고 소비하는 공간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다시 말해,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을 투입해 유물을 구입하고 또 그렇게 구입한 작품을 보관 전시하기 위해서 또 엄청난 돈이 투입되어야 하지만,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미술관의 생산성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국립 현대 미술관은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이 두 가지 모순을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다. 난해한 현대 예술이라고 하지만 이곳만큼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충만한 미술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광장은 늘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로 초만원이다.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일본 젊은이도 볼 수 있고, 그 옆에서 차력을 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건장한 아저씨들은 영화 <길>에서 차력사로 나왔던 앤소니 퀸을 연상시킨다. 뿐만인가. 옛날 손풍금을 들고 나와 모자를 거꾸로 벗어놓은 채 에디트 피아프의 흘러간 노래를 연주하는 아저씨, 어깨 위에 하얀 생쥐를 올려 놓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줄담배를 피워대는 빨간 머리의 펑크족들, 이것이 모두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그런데, 이 풍경들은 단순히 풍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립 현대 미술관의 살아 숨쉬는 소장품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국립 현대 미술관은 흘러간 예술품을 단순히 보관만 하는 곳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생활과 예술을 생산하는 문화 공장인 것이다.

예술이 되어버린 거리의 낙서, 폐품이 된 타이어나 철근을 이용한 조각들, 부서진 피아노 밖으로 튀어나온 철사들, 텔레비전을 이용한 설치미술 등 국립 현대 미술관에 있는 소장품들은 난해한 현대 예술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인 것이다. 또 한 이곳의 예술품들은 루브르나 오르세의 소장품들과는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바로 예술 장르 간의 통합 현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각, 회화, 건축, 디자인 등이 한곳에서 함께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광장 북쪽 끝에는 루마니아 태생의 현대 조각가 브랑쿠시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브랑쿠시 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국립 현대 미술관 내부


국립 현대 미술관 내부


국립 현대 미술관 내부. 모든 현대 예술 사조를 만날 수 있다.

퐁피두 센터

드골 장군에 이어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따 흔히 퐁피두 센터로 불리는 이곳은 현대 미술관을 제외하면 무료 입장이 허용되는 곳이다. 전체 입장객의 약 65%가 35세 이하의 신세대들이다. 무료 입장이기 때문에 그 수를 정확하게 헤아릴 수는 없지만, 프랑스에서 노트르담 성당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입장객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퐁피두 센터이다.

지금 퐁피두 센터 내에는 국립 현대 미술관 MNAM, 대중 정보 도서관BPI, 음향음악조율 연구소Ircam과 같은 기관이 들어와 있고 기획 전시실과 공연장 등도 마련되어 있으며 식당, 카페 등도 들어와 있다. 다시 말해 미술, 문학, 음악이라는 3대 예술 장르가 종합적으로 한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건물은 리차드 로저와 엔조 피아노 두 사람이 맡았으며 1977년에 완공되었다. 건물의 기능적 역할을 하는 부분을 모두 건물 외부에 노출시킨 아방가르드 건축의 효시로 간주되는 건물이다. 전기 배선 (황색),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의 이동 시설 (적색), 공조 시스템과 상하수도 (청색) 등이 모두 건물 밖으로 나와 있고 고유의 색을 칠해 오히려 강조를 해놓았다. 

퐁피두 센터 옆에는 장난감들이 들어가 있는 작은 분수가 생 메리 성당을 배경으로 사시사철 물을 뿜고 있다. 이 분수는 스트라빈스키 분수로, 분수 안에 들어가 있는 장난감처럼 생긴 오브제들은 탱글리와 니키드 생팔의 조각 작품들이다. 러시아 현대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분수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분수 뒤로 보이는 성당은 7세기에 지금의 성당 자리에서 순교한 생 메리를 기리는 생 메리 성당이다. 15세기 화염 고딕 양식으로 17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특히 내부의 목공예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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