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
스위스 바젤
[ 프랑스, 독일 국경 지대의 라인 강에 자리한 바젤은 취리히에 이은 스위스 제2의 도시다. ]
Basel
바젤슈타트 주의 주도이며 주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불어로는 발르Bâle라고 부르는 면적 37km2, 인구 약 20만 명(2021년 기준)의 바젤은 프랑스, 독일과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취리히 다음 가는 스위스 제2의 도시다. 특히, 바젤은 라인 강을 이용한 물류 중심지로서도 큰 역할을 한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프로테스탄트이다. 항해가 가능한 라인 강 유역의 스위스 라인란트의 입구에 위치하여 옛부터 상업,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지금도 스위스에서 가장 상공업과 금융이 발달한 지역 중 한 곳이다. 유럽 각 철도의 교차지역이기도 하다.
라인 강을 따라 바다와 연결되기 때문에 내륙국인 스위스를 바다와 연결하는 중요한 도시이자 프랑스, 독일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유럽 철도의 중요한 요충지이기도 하다. 1924년에 건설된 라인 항은 공업 원료, 에너지를 수입하고 완제품을 수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섬유공업과 염색 산업이 활발하다. 1917년 이래 해마다 4월에는 ‘스위스 산업박람회’가 열린다. 매년 6월 열리는‘바젤 아트 페어’는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의 견본시 중 하나다.
주민의 70%가 프로테스탄트이며, 이들 대부분은 독일어를 사용한다. 시가는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우안의 공업지역과 좌안의 상업, 문화 지역으로 구분된다. 1460년 창립된 스위스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대학과 미술관, 만화 박물관을 비롯해 18개의 박물관이 있고, 국제결제은행, 성서협회, 프로테스탄트 전도협회 등 종교 시설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대성당이 있다. 1529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는 오버라인 지방 인문주의의 중심지가 되었다.
‘톨레랑스’의 도시 바젤
톨레랑스Tolérance는 불어로 관용을 뜻한다. 바젤은 역사적으로 이 톨레랑스의 도시였다. 17세기 말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시교도들에게 예배의 자유를 부여했던 낭트칙령을 무효화 했을 때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몰려온 프랑스 신교도들인 위그노들은 바젤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시계 기술, 날염 기술 등을 갖고 있던 이들 프랑스 위그노들은 이후 바젤 경제 발달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바젤의 이러한 종교적 관용 정신은 황제권과 교황권이 맞서 서로 대립하던 중세 말기로 거슬러 올라 간다. 공의회의 우선권을 인정한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 이후, 프랑스 국교주의인 갈리카니슴Gallicanisme의 영향이 더해져 1439년에는 교황을 파면하고 이른바 대립교황인 펠릭스 5세를 선출할 정도로 당시 교황권과 황제권은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바젤 공의회로 불리는 가톨릭 교회의 종교회의가 이곳 바젤에서 1431년부터 1447년 사이에 개최되어, 교황권에 제약을 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교황청 내에 의회를 두어 이 의회의 의결을 교황권보다 우위에 두려는 회의였으나, 교황과의 대립으로 무산되고 만다. 바젤은 신교도를 옹호하면서도 가톨릭에 대해 적의를 품지 않았으며, 가톨릭 축제인 카니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제나 관용의 정신으로 같은 신을 믿는 방법의 차이를 인정해 왔다. 이러한 관용은 프랑스, 독일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리적 환경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주소 : Basel,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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