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도시, 로마의 유혹

이탈리아 로마

쥬디 JEUDI

영원한 도시, 로마의 유혹

이탈리아 로마 | 2022.03.10

로마 주요 정보





생명과 활기를 더하는 로마의 분수들

파스타 이야기

광고 속의 성 베드로 성당




생명과 활기를 더하는 로마의 분수들

로마에는 약 300 여 개의 분수가 있다. 

광장마다 골목마다 자리잡고 있는 분수에는 때론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기도 하고 때론 멋진 조각이 장식되어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유래가 있는 것도 있고 더러는 주위의 경관과 어울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순수하게 아름다운 분수도 있다. 

왜 이렇게 로마에는 분수가 많을까?

대형 목욕탕을 위해서도 많은 물이 필요했지만 식용수나 기타 여러 목적으로 도심 한가운데로 물을 끌어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식 식 정원이나 건축 개념에서 움직이는 물을 통해 생명력을 강조하는 것이 르네상스 이후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미학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을 뿜어대는 분수 하나가 광장에 얼마나 활기를 불어 넣는지는 광장에 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분수는 이탈리아 어로 폰타나 fontana라고 하고 복수가 되면 어미가 조금 달라진다.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후기 바로크 양식의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 있는 300 여 개의 분수 중 가장 아름다운 분수로 꼽힌다. 등 뒤로 동전을 던져 소원을 비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펠리니의 걸작 영화 즉, <달콤한 인생>에서 마스트로이안니와 그램머 아니타가 야회복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는 장면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트레비는 세 갈래 길이 만난다는 뜻이다. 폴리 궁전의 벽에 아치를 만들어 이용한 트레비 분수는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명령에 의해 1732년에 공사를 시작해 30년 후인 1762년에 건축가 니콜라 살비에 의해 완공되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혹은 오케아노스)이 아들들인 트리톤이 부는 고동 소리에 맞추어 두 마리의 말을 탄 채 물살을 가르고 나오는 다이나믹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말 한 마리는 고분고분하고 다른 말은 뒷발로 일어서 저항을 하고 있다. 이는 잔잔한 바다와 파도치는 바다를 각각 상징한다. 포세이돈의 아들들인 트리톤은 강의 신들에게 바다의 신인 아버지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뿔고동 나팔을 불고 있다. 바다의 신이 등장하고 강의 신들이 고동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강이 범람하고 파도가 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트레비 분수에 묘사된 장면이 구약의 노아의 홍수에 나오는 장면과 유사한 것으로, 지상 세계의 타락을 견디지 못한 신들이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대홍수를 묘사한 것이다.

왼쪽 상단의 부조는 기원전 19년, 로마에 용수공급을 목적으로 길이 20km의 수로 공사를 지시하는 아그리파 황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오른쪽 부조는 한 처녀가 병사들에게 샘을 일러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처녀가 일러준 샘물이라고 해서 이 수로를 아쿠아 비르지네, 즉 처녀의 샘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명한 샘은 이렇게 언제나 처녀와 관계된 전설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포세이돈 양 옆으로는 각각 건강의 여신과 풍요의 여신상이 들어가 있다. 이 두 여신은 옛날부터 로마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여신들이다.

트레비 분수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갑자기 나타난다. 그래서 느닷없이 나타난 분수를 보고 “이게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구나” 하며 대다수 사람들이 잠시 넋을 잃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관광객들은 마치 제정신이 든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주머니를 부스럭거리며 동전을 찾기 시작한다. 미리 이야기를 듣고 온 사람은 동전 두 개를 꺼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를 던진 다음 다시 동전을 준비해야 한다. 첫 번째 동전은 로마에 다시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동전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소망을 담은 것이다. 로마에 다시 오고 싶은 이들은 최소 동전 하나라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모인 동전은 적십자에서 거두어 가는데, 간혹 야음을 틈타 동전을 가져가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요즈음은 그래서 경찰관이 배치되어 있고 물에 다량의 표백제를 풀어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보나 광장의 분수들 Piazza Navona


나보나 광장의 4대강 분수

4대강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  

나보나 광장에는 3개의 분수가 있다.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의 명에 따라 17세기 바로크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지안로렌초 베르니니가 만든 광장 가운데 있는 <4대강 분수>가 가장 볼 만하다. 오벨리스크 아래에, 아프리카의 나일 강, 유럽의 도나우 강, 아메리카의 라플라타 강, 아시아의 갠지스 강이 4인의 거인 조각을 통해 상징화되어 있다. 각 인물은 사자, 말, 용, 뱀 등 4대륙을 상징하는 동물들과 종려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둘러싸여 있다.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비둘기와 올리브 가지는 교황을 배출한 팜필리 가문을 나타낸다. 여러 가지 장식으로 보기 좋은 분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름다운 분수 만은 아닌 것이, 누구나 사지 않을 수 없는 빵에 부과한 세금을 거두어 그 돈으로 지은 분수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문을 위해 빵에다 세금을 부과한 교황을 당시 민중들이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중앙의 오벨리스크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집권기에 제작된 것으로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가 아피아 구가도의 막센티우스 경기장에서 가져와 조각으로 기단부를 감싸도록 했다.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베르니니의 아이디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잘 다듬어진 기하학적인 오벨리스크와 바로크적인 얼른 보기에 다듬지 않은 것 같은 투박한 조각의 콘트라스트를 노렸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마치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강의 신들이 몸을 뒤틀고 있는 형상이다. 

무어 인의 분수 Fontana del Moro

무어 인의 분수는 16세기 말에 제작된 것을 1653년 교황 이노켄티우스 10세의 요청에 따라 베르니니가 다시 보수한 것이다. 하지만 보수했다고 하기보다는 새로 지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세부적인 것은 제자가 했지만, 중앙의 무어인 조각을 고안하는 등 모든 아이디어는 베르니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넵튠의 분수 Fontana di Nettuno

바다의 신 넵튠을 조각한 넵튠 분수는 16세기 말경 나보나 광장으로 옮겨져 온 분수다. 거대한 문어와 싸우고 있는 중앙의 넵튠 조각과 그 주변의 조각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성 베드로 성당 광장의 분수 San Pietro 

원형의 드넓은 광장에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양 옆으로 대형 수반처럼 생긴 두 개의 분수가 물을 내뿜고 있다. 원래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물로 세례를 받곤 한다. 거대한 성당 앞에 세워진 역시 거대한 두 분수는 죄의 용서를 상징한다. 17세기에 제작된 것이니 약 400년 정도 된 옛 작품들이다. 물보라 속으로 보이는 성당은 그 신비감을 더해 준다. 

파치노 분수 Facchino

지금은 로마 은행 건물 벽에 달라붙어 있지만 옛날에는 로마 인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물 장수의 조각상은 마틴 루터를 조각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지만 로마 물장수 조합원의 복장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 조각 역시 말하는 조각이어서 권력자들의 비리를 적은 메모지들이 분수 곁에 놓여있곤 했다. 현재의 조각은 16세기 말에 제작된 것이다.  


스페인 광장의 바르카차 분수

스페인 광장의 바르카차 분수 Fontana della Barcaccia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수 때 떠내려 온 배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17세기 최고의 바로크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베르니니가 만들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그의 아버지인 피에트로가 교황 우르바누스 8세를 위하여 제작하였다.

16세기 말 홍수로 테베레 강이 범람하면서 스페인 광장에까지 배가 좌초되어 떠내려 오게 되었는데, 조각가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계단에 놓인 이름다운 철쭉과 물이 가득한 푸른 분수의 조화는 왜 스페인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를 설명해준다. 

트리톤 분수 Tritone

광장에는 베르니니가 만든 멋진 분수가 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혹은 오케아누스)의 아들인 트리톤의 이름을 따 트리톤 분수로 불린다. 마치 목마른 신의 아들이 물을 들이키는 형상을 하고 있다. 

펼쳐진 조개 위에 올라간 트리톤이 뿔고동을 힘차게 부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 이 분수 조각은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조각의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베르니니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분수에도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의 교황 우르바누스 8세를 나타내는 꿀벌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포폴로 광장의 사자 분수

포폴로 광장의 사자 분수Piazza Popolo 

쌍둥이 성당이 있는 포폴로 광장에는 기원전 19세기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치세 당시 제작된 오벨리스크와 사자상이 놓여 있다. 사자는 입에서 물을 쏟아내고 있는 분수로 활용되고 있다. 단순한 분수가 아니다. 대략 4000년 전의 유물들인 것이다.


공화국 광장의 나이아디 분수

공화국 광장의 나이아디 분수 Piazza Republica, Naiadi

분수를 장식하고 있는 네 명의 물의 요정들이 모두 누드에다 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던 분수다. 

판테온 Pantheon

판테온 앞에는 로톤다 광장이 자리잡고 있고 이 광장의 한가운데에 1578년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만든 분수가 놓여 있다. 현재는 이집트 이지시 신전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중앙에 들어가 있는데, 이는 1711년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작품이다. 로마의 풍취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로마 최고의 건축물인 판테온과 오벨리스크, 그리고 분수와 분수를 장식하고 있는 돌고래들……사방이 집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분수와 수천 년 역사의 고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스타 이야기

이탈리아는 일인당 일년에 28kg 이상의 파스타를 소비하는 세계 최대의 국수 소비국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의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연간 6kg를 소비한다는 통계와 비교하면 거의 5배 이상 이탈리아인들이 파스타를 많이 먹는 셈이다. 흔히 마르코 폴로가 처음 도입했다고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틀린 이야기이다. 선사 시대의 벽화에도 이미 나타나 있고 아피시우스의 요리책에도 각종 도구와 함께 설명이 등장한다. 하지만 시작은 그렇다고 해도 본격적으로 파스타를 먹기 시작한 것은 시칠리아가 아랍의 점령을 당했을 때인 9세기에서 11세기 동안이고 이 때를 전후해 전 이탈리아로 퍼졌다.  

파스타 세카, 즉 마른 국수의 원조로 알려진 나폴리는 19세기 들어 대규모 파스타 공장이 생겨나 전 이탈리아에 물량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마른 국수인 파스타 세카는 이동과 보관이 손쉬웠기 때문에 쉽게 퍼져나갔다. 일반적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 프레스카, 즉 물에 젖은 국수를 먹고 흔히 파스타로 불리는 마른 국수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즐겨 먹는다. 물론 마른 국수라 해도 물에 넣고 삶으면 면발이 풀어지며 국수가 된다. 굵은 밀가루로 만든 파스타 세카는 끊는 물에 15분 정도 한참을 삶아야 된다.

파스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가 스파게티이다. 가늘고 긴 면발 형태로 제조된다. 보통은 삼지창이 아닌 가지가 넷 달린 포크를 이용해 먹는다. 이 스파게티 용 포크 역시 나폴리에서 고안된 것이다. 스파게티 광인 소피아 로렌은 입을 대고 빨아서 삼키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포크를 이용하는 것이 더 많이 먹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가난한 나폴리 어부들은 머리를 젖히고 손으로 먹기도 했다. 

두 번째 종류가 마카로니다. 그리스 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마카로니라는 ‘말은 행복하다’는 뜻이다. 파스타 세코, 즉 마른 국수를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모두 마카로니라고 부른다. 이웃 국가인 프랑스인들에게는 마카로니 하면 이탈리아 사람을 지칭하는 별명이 된다. 

마카로니는 표면이 매끈한 것과 홈이 있는 것이 있다. 세 번째 종류는 다양하게 모양을 낸 것으로 지방마다 고유의 특징을 갖고 있다. 안에다 속을 넣는 것도 있어 만두와 가까운 파스타도 있다. 좀더 자세히 구분하면 면발의 폭, 길이, 형태 등에 따라 오른쪽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 이탈리아의 다양한 파스타들 ]

1 Spaghetti 스파게티

  • 직선의 길고 둥근 면발, 길이는 다양하다.
2 Spaghettini 스파게티니
  • 스파게티보다 면발이 가늘다.
3 Spirale 스피랄레
  • 스파게티 두 가닥을 꼬아서 만들다.
4 Tagliatelle 타글리아텔레
  • 시금치, 홍당무 즙 등으로 착색. 새둥지 형태의 면발 중 가장 가늘다.
5 Taglierini 타글리에리니
  • 폭 3mm의 면발 말이
6 Tortellini 토르텔리니
  • 볼로냐 지방 특산품. 안에 치즈나 고기를 넣는다.
7 Cannelloni 카넬로니
  • 속을 넣기 편한 원통형 파스타
8 Tubetti 투베티
  • 원통형의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짤막한 파스타
9 Farfalle 파르팔레
  • 나비형 파스타
10 Fedelini 페델리니
  • 가장 가는 면발의 파스타
11 Fettccine 페투치네
  • 달걀 반죽으로 만든 파스타. 둥치 형태로 말아서 팔고 삶으면 풀어진다. 시금치로 착색을 하기도 함
12 Gnocchetti 뇨체티
  • 애벌레 모양의 작은 파스타
13 Gnocchi 뇨치
  • 애벌레 모양의 작은 파스타
14 Lasagne 라사녜
  • 홈이 진 넓적한 모양의 파스타, 시금치로 착색
15 Lingue di passero 린구에 디 파세로
  • 스파게티 정도의 길이에 얇고 넓적한 면발. 참새의 혀라는 뜻임
16 Linguine 린구이네
  • 가늘고 넓적한 면발의 파스타
17 Aneli 아넬리
  • 반지 모양의 파스타
18 Bavette 바베트
  • 좁고 긴 파스타
19 Bucatini 부카티니
  • 가운데 줄이 간 스파게티 형태의 파스타
20 Chiocchiole 치오치올레
  • 여러 지방에서 만드는 파스타. 지방마다 이름이 다르다. 작은 조가비 모양의 파스타
21 Conchiglie 콘치글리에
  • 소스를 만들 때 자주 사용되는 파스타
22 Ditali 디탈리
  • 골무 형태의 나폴리 파스타
23 Faresine 파레시네
  • 장방형으로 말아서 팜. 넓적한 면발의 파스타

광고 속의 성 베드로 성당


한국의 한 가방 제조업체에서 성 베드로 성당을 이용해 멋진 광고를 만들었다. 상당히 도발적인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사원의 돔 지붕이 두 다리 사이를 비켜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당을 보지 말고, 가방을 보라는 것인지, 여인의 다리를 보라는 것인지... 그러나 이 이미지로부터 뭔가 시원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은 웬일일까? 광고가 도발적이긴 해도 이를 꼭 신성모독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원한 느낌이나, 도발적인 분위기보다도 사실은 광고를 기획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주는 참신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바티칸 시국

바티칸 시국은 면적 0.44㎢, 인구 950명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다.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테베레 강 오른쪽, 로마 북서부의 언덕 이름에서 유래했다. 서기 64 년 인근에 성 베드로의 묘가 있었고, 그 위에 최초로 성당이 세워진 것은 서기 324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이다. 이 성당은 르네상스 당시 완전히 개축되어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게 된다.

1871년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세속 권력을 상실하게 된 바티칸은 1929년 이탈리아와 라테라노 협약을 맺고 이탈리아로부터 교황청 주변지역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아 바티칸 시국으로 재탄생한다. 가장 작은 국가가 된 바티칸 시국의 영토에는 성 베드로 성당과 그 일대,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 건물, 카스텔 칸돌포에 있는 교황의 하절기 관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교황기이기도 한 국기는 1825년, 교황 레오 12세 때 제정된 황색과 백색의 2색기로, 백색 부분 중앙에 베드로의 열쇠를 상징하는 금은 2개의 열쇠가 교황의 관을 받친 그림이 들어가 있다. 언어는 이탈리아 어를 사용하지만 프랑스 어와 영어도 사용한다. 라틴 어도 물론 사용한다.

바티칸 시국의 주 수입원은 신자들의 기부금이 주를 이루며 그 외에 바티칸 소유의 부동산 임대 수입, 바티칸 은행의 투자사업, 우표와 출판물의 판매, 관광 수입 등이다. 세출의 대부분은 3,000명의 고용원 임금과 해외공관 유지, 종교회의 비용에 사용된다. 바티칸 시국은 이탈리아 어 일간지인 <오세프 바토레 로마노>를 발행하며 1931년 개설될 바티칸 라디오 방송이 현재 37개국어로 방송을 하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없다. 바티칸 시국과 한국은 1963년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고, 1974년 주 바티칸 교황청 대사관을 개설했다. 1989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한해 참석한 적이 있다.


성 베드로 성당

교황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자 로마 주교의 약칭이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12명의 사도 중에서 베드로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했다. 베드로는 반석을 뜻하는 말이며 예수님은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였다. 또 원래 어부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시며 첫 번째 사도로 삼으셨다. 이 베드로가 바로 제 1대 교황이다.

■ 역사

초기에는 로마 주교도 다른 주교와 마찬가지로 성직자나 일반 신도 가운데서 선출되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경우에는 황제가 재결하였기 때문에 11∼12세기 무렵까지는 황제측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 후로는 추기경단Collegium Cardinalis만이 교황 선출권을 가지게 되었다. 교황권이 군주들이 갖고 있던 세속적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에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교황과는 별도로 군주가 임명한 또 다른 교황이 출현하기도 했다. 9세기부터 시작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리는 11세기에 이르러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교황권의 최대 위기는 16세기에 촉발된 종교개혁 당시 찾아온다. 로마 교황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교황권도 축소되었고, 이에 1545년 교황 바오로 3세 때 트리엔트에서 열려 1563년 교황 피우스 4세 때 폐막된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개혁과 대결하여 교회 내의 폐단을 제거하고 교회를 쇄신할 것을 주장하게 된다. 18세기 이후 교황의 세속권은 더욱 약해져, 1870년에는 많은 교황령이 이탈리아 령으로 돌아갔다. 그 뒤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의 체결로 바티칸이 시국으로 독립되면서 교황은 바티칸 공화국의 최고통치자가 된다.

■ 선거

현행의 교회법에 의하면, 교황은 전임 교황이 죽은 후 15일 이내에 소집되는 ‘콘클라베’로 불리는 추기경단의 선거회를 통해 선출된다. 원칙적으로 남자 가톨릭 전통은 그 후에도 이어져 교황이 황제의 대관식을 집전하게 된다. 역사가 천 년이 넘는 이 옛 건물을 헐어 버리고 현재와 같은 성당이 건립되기 시작한 것은 1503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에 의해서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모습

성 베드로 성당

■ 성당 역사

서기 64년 베드로가 순교한 자리에 그를 기리는 성당 이 처음으로 들어선 것은 기독교를 공인하고 스스로 개종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치하인 324년이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성당은 긴 장방형 건물이었고 이를 바실리카로 부른다. 당시 성당 앞에는 작은 앞뜰이 있었고 그 중앙에 솔방울로 장식된 분수가 있었다. 현재 바티칸 궁 뒷편의 정원에 있는 거대한 솔방울 조각이 바로 이 솔방울이다.

게르만 족, 고트 족, 사라센 족 등 외적의 침입을 겪었지만 성당은 계속 같은 자리를 지켰다. 서기 800년 성탄절날, 프랑크 왕국의 샤를르마뉴 대제가 이 곳에 찾아와 교황 레오 3세로부터 대관식을 집전받는다. 이 전통은 그 후에도 이어져 교황이 황제의 대관식을 집전하게 된다. 역사가 천 년이 넘는 이 옛 건물을 헐어 버리고 현재와 같은 성당이 건립되기 시작한 것은 1503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에 의해서다.


해질 무렵의 성 베드로 성당

 ■ 성당 건축

성 베드로 성당은 교황 율리우스 2세 당시인 1506년 건축가 브라만테의 설계에 의해 다시 건립되기 시작해, 이후 여러 번에 걸쳐 증개축되기를 반복했고 이 증개축 작업이 이루어질 때마다 기라성 같은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동원된다. 라파엘로, 페루지, 상갈로, 미켈란젤로 등이 이들이며 후일 베르니니와 마데르노도 합류한다.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에 온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린다. 브라만테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여기에 긴 회당을 추가한 라틴 십자가형의 설계를 계획하였으나 라파엘로마저 곧 숨을 거둔다. 154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마침내 72세 가 된 미켈란젤로에게 공사의 전권을 일임한다. 그는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설계를 적용해 브라만테의 설계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브라만테와는 달리 네 구석 의 작은 원개를 없애고 건물 전체의 긴밀한 조형성과 다이내믹한 공간을 대원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일한다는 탁월한 구상을 창안해냈다. 일체의 보수를 사양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사도 베드로에 대한 존경에서 일에 몰두한 미켈란젤로는 1564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칠 때까지 대원개의 기초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직경 42.4m, 바닥에서 천장의 십자가까지의 높이가 약 133m에 달하는 이 원개 공사는 그가 남긴 목형과 함께 1588년 자코모 델라 볼타에게 인계되었고, 다시 도메니코 폰타나의 손으로 이어져 1590년 드디어 완성을 보게 된다. 파사드라 불리는 성단의 전면은 카를로 마데르노의 작품이다. 

이렇게 해서 성 베드로 성당은 120년 동안 브라만테에서 미켈란젤로를 거쳐 베르니니까지 무려 12명의 대 건축가의 손을 거치며 공사가 진행된 끝에 완성되 었고 그 사이 교황만도 20명이 바뀌었다.  

현재 성당은 길이 211미터에 6만 명이 동시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당들과의 비교를 쉽게 하기 위해 성당 바닥에 유명 성당들의 크기를 적어놓았다. 참고로 12세기에 공사를 시작해 성 베드로 성당보다 300 년 정도 먼저 완공된 고딕 건축의 걸작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길이는 130미터다.


■ 성 베드로 광장

베르니니가 나타나 성당 앞의 광장을 에워싼 회랑과 광장을 완성하는 것은 성당이 완공된지 70여 년이 지난 1667년이다. 무려 284개의 도리아 식 기둥들이 4열로 늘어선 이 회랑은 세상의 모든 곳이 성소로 향한다는 상징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낸 빼어난 작품이다. 회랑 위에는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제작한 140명에 달하는 성자와 순교자들의 조각이 올라가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좌우로 마데르노와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가 자리잡고 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네로 황제의 경기장에 있던 것을 1586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광장은 가장 긴 쪽의 길이가 196미터에 달한다.


성 베드로 성당 내부

■ 성당 내부

성 베드로 성당 내부는 외부와 마찬가지로 성소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미술관이자 박물관이다. 성당 안에는 500개의 기둥, 50개의 제단, 450개의 조각이 있으며 6만 명이 미사를 드릴 수 있다.

현관에는 5개의 문이 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문이 죽음의 문이다. 중앙문이 청동의 문인데, 1445년 안토니오 아베르리노가 만들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문이 포르타 산타, 즉 성스러운 문이다. 16개의 청동 틀 속에 부조가 들어가 있는 이 문은 50년 주기로 찾아오는 성스러운 해를 맞아 오직 교황만이 열고 닫을 수 있다. 문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바닥을 보면 모자이크가 있는데, 1300년 옛 바실리카 분수를 장식하기 위해 그 유명한 중세 화가 조토가 제작한 것이다. 


성 베드로 성당 전경

 

성 베드로 상

▶ 주 제단의 천개 (天蓋) 

높이 29미터의 이 거대한 닫집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주 제단이다. 역시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1624년에 시작해 10년 후인 1633년 우르바누스 8세가 축성한다. 육중한 청동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개방된 공간으로 인해 육중함은 많이 상쇄되고 있다. 하지만 건설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원래 보통 성당의 천개는 이동이 가능하도록 나무와 천으로 만들지만 베르니니는 천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움직여 이 곳으로 와야 한다는 생각에 이동이 불가능한 청동으로 만들었다. 주 제단 밑에는 마데르노가 만든 성 베드로의 묘가 있다. 

▶ 4개의 주 기둥 

이 4개의 기둥이 중앙 돔을 받치고 있다. 최초로 현재의 성당 건축을 시작한 브라만테에서 시작해 미켈란젤로에 와서 끝난 공사는 베르니니에 의해 이 4개의 기둥에 대리석이 입혀지고 벽감을 파서 높이 5m짜리 조각을 만들어 배치했다. 


중앙 돔, 이곳에서 로마 전경을 볼 수 있다

 

성 베드로 성당 내부에서 바라본 중앙 돔

▶ 중앙 돔

로마에 있는 돔 중 가장 큰 이 돔은 브리만테가 설계하고 미켈란젤로의 손을 거쳐 1593년 자코모델라 포르타와 도메니코 폰타나가 완공했다. 처음 설계 당시 브라만테는 판테온 신전을 모방했고 미켈란젤로는 이를 더욱 큰 규모로 확대했다. 돔을 바치는 기둥 상단 부에는 지름 8m의 원형 액자가 있고 그 안에는 4명의 복음서 기자들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바로 위로는 라틴 어로 쓴 문장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너를 베드로라 부르니 너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너에게 천상의 왕국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주노라.”

성 베드로 성당의 중앙 돔은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회랑을 지나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데, 120미터 높이 정도 올라 가는 것이며 이 곳에서 내려다 보는 로마 전경은 기억에 남는 광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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